중국에서는 최고의 명군名君으로 당태종(이세민)을 꼽는데, 우리에게는 좋지 않은 기억이 있습니다. 당태종은 10만 군사를 보내 고구려를 공격한 적이 있는데, 당시 당태종의 군대는 최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고구려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당나라 군대가 맹공을 퍼부어도 안시성의 양만춘과 고구려 군사들이 죽을 힘을 다해 막아냈기 때문입니다. 결국 당태종은 군사들을 물리고, 오히려 양만춘에게 사신을 보내 적장이지만 당신같이 훌륭한 장수는 본 적이 없다고 하며 상을 내립니다.
당태종이 중국 역사상 존경받는 명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겸청(兼聽)에 있습니다. 겸청이란 두루 여러 사람의 말을 듣는다는 말입니다. 당태종은 자기 의견에 찬성하는 사람의 말만 듣지 않고, 반대하는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당태종의 신하 중 강직하기로 소문난 위징(魏徵)이 있었는데, 위징은 당태종에게 사실의 옳고 그름을 직언하는 신하였습니다. 인간 본성상 직언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당태종은 힘들지만 위징의 말을 듣고 바르게 판단하려고 노력합니다. 당태종이 위징을 얼마나 신뢰했는지 위징이 병들어 죽었을 때 당태종이 그의 빈소에 가서 말합니다. “나에게는 세 개의 거울이 있다. 하나는 나의 의관을 바로 잡아주는 청동 거울이요, 둘째는 나라들의 흥망성쇠의 원인을 살필 수 있는 역사라는 거울이요, 셋째는 절대 권력자인 황제의 그릇된 사심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위징이라는 거울이다." 당태종이 고구려 원정에 실패하고 돌아왔을 때, 만약 위징이 살아 있었다면 나의 고구려 원정을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탄했다고 합니다.
성도인 우리에게도 거울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약 1:23-24)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에 비유해서 말씀은 나의 모습(삶,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말씀의 거울을 보고도 잘못된 삶을 바꾸지 않는 것은,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책망합니다. 말씀은 우리가 생명의 길, 삶의 정도를 가도록 조언과 책망을 아끼지 않습니다. 조언과 책망을 받는 것은 인간 본성상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이 불편해도 말씀을 경청하며 순종할 때, 복된 성도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복이 있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