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 말 동방에 텔레마쿠스(Telemachus)라는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등지고 광야로 들어가 은둔 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그는 사람이 없는 광야는 그리스도인이 있을 곳이 아님을 깨닫고, 일어나 세계의 수도인 로마로 갑니다. 당시 로마는 기독교 국가였지만 주말마다 원형경기장에는 포로들이 서로 싸우는 검투 경기가 있었습니다. 황제와 신하들 그리고 많은 로마 시민들은 검투사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는 모습에 환호합니다.
한번은 검투사들이 서로 싸우려고 할 때, 텔레마쿠스는 경기장에 뛰어 들어가 비인간적인 칼싸움을 제지합니다. 관중들은 재미있는 경기를 중단시킨 텔레마쿠스를 향해 아우성을 칩니다. 경기 진행자들이 그를 경기장 밖으로 끌어냈지만 텔레마쿠스는 계속 경기장에 들어가 검투사들의 싸움을 말립니다. 결국 한 지휘관이 텔레마쿠스를 칠 것을 명하자 병사가 칼을 들어 그의 몸을 쳤고, 그는 죽어가면서도 사람들을 향해 외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싸움을 멈추시오!” 기분이 상한 황제와 신하들은 그 자리를 떠났고, 관중들 또한 경기장을 나갑니다. 이후에 로마 시민들은 경기장에서 외친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던 중 그는 독실한 기독교 수도사임을 알게 되었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검투 경기는 비인간적인 경기로 기독 시민인 로마 시민이 해서는 안되는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주후 391년에 있었던 이 일 후에 로마에서는 잔인한 검투 경기가 사라졌습니다. 텔레마쿠스의 희생으로 더 이상 노예 검투사들이 죽지 않게 되었고, 로마 시민은 양심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으로 발전합니다. 달리 말해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이 없으면 인간의 삶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기독교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곳곳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편만하게 퍼질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성직자들과 전도자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전체 인구의 1/4이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선교사들이 척박한 땅에 와서 복음을 위해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했는데, 친히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죄로부터 구원해 내셨습니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없이 면류관 없습니다. 내게 있는 십자가를 믿음으로 질 때, 그 가정, 그 교회, 그 공동체는 살아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썩어서 죽는 한 알의 밀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