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에 ‘르상티망’(ressentiment)이란 말이 있는데, 그 정의는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는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 등이 뒤섞인 감정”입니다.누군가는 르상티망을 단순히 시기심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기심만으로는 설명하기 복잡한 감정입니다.
독일 철학자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는 르상티망을 가진 사람은 용기있는 행동으로 어떤 사태를 호전시키려 하지않고, 반대로 르상티망을 일으키는 가치기준을 뒤바꾸거나 정반대의 가치판단을 주장해서 르상티망을 해소하려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니체는 대표적인 예로 기독교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 제국에서 지배 받던 기독교인들은 줄곧 빈곤에 허덕였고, 부와 권력을 가진 로마인들을 선망하면서도 증오했다. 하지만 현실을 바꾸기도, 로마인보다 우위에 서기도 어려웠던 그들은 복수를 위해 신을 만들어 ‘로마인은 풍요롭지만 우리는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은 우리 쪽이다. 부자와 권력자들은 신에게 미움받고 있어서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논리를 세웠다.” 니체는 복음서에 나오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을 대표적인 르상티망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기독교에 대한 니체의 주장을 동의하지 않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여러 면에서 우리 안에 르상티망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세상에 좋은 것들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을 볼 때, 단지 그들은 헛된 가치에 정신이 팔려 사는 사람들로 치부하며, 나는 그들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사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입니다. 자칫 이러한 생각은 우리로 상대방을 정죄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데, 성경은 이러한 마음을 ‘자기 의’(義)라고 하며 경계할 것을 말씀합니다. 자기 의를 가진 사람은 은연중에 자기는 의롭고 타인은 불의하다고 정죄하는데, 이것은 영적으로 잘못된 르상티망입니다. 우리 안에 잘못된 르상티망은 없는지 두려운 마음으로 살펴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