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강연자가 강의 도중에 이런 질문을 합니다. "살면서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 분 계십니까?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 분이 계시면 손을 들어 보세요." 그때 80살이 넘은 할아버지가 손을 듭니다. 강사는 놀라서 할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니 어떻게 하면 미워하는 사람이 없이 살 수 있나요? 비결이 무엇입니까?" 할아버지가 조용히 말합니다. "미워하는 사람들이 다 죽었어..."
우스운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맞는 말입니다. 죽었는데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더 이상 미워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살아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면 미워하는 사람 없이 살기 위해서는 그들이 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면 될까요? 이건 비인간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미움의 대상이 죽지 않고 살아 있을 때, 미움을 줄이거나 없애는 방법은 반대로 내가 죽는 것입니다. 내가 죽었는데 더 이상 누구를, 무엇을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내 몸을 죽이는 것이 아닌 내 마음, 내 속사람을 죽이는 것을 말합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반응하지 않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살아있는 사람에게 욕하고 침뱉고 발로 차면 상대방 또한 그 이상으로 욕하고 침뱉고 폭력을 행사할 것입니다. 그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은 시신 앞에서 아무리 욕하고 발로 차도 시신은 결코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어떤 사람인가요?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기본적으로 성도는 죽은 사람입니다. 죄에 대해서, 세상의 욕심과 유혹에 대해서, 미움과 시기 등등에 대해서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러한 것들에 더 이상 반응하거나 대꾸하지 않기에 내 자아가 죽으면 많은 것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내 속사람이 죽으면 내 주변의 삶은 살아납니다. 죽음으로써 사는 것,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가르쳐 주신 역설의 진리입니다. 바울의 고백이 우리 고백되길 기도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