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간혹 우리는 장시간 여행을 갈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고 좋지만 막상 여행이 계속되면 체력이 떨어지고, 불편한 것들로 인해 마음 속에 빨리 집에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좋은 곳은 바로 내가 사는 집임을 실감합니다.
영어 ‘travel’이 ‘여행’이라는 의미로 처음 사용된 것은 14세기 무렵이고, 고대 프랑스 단어인 ‘travail’에서 파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travail’의 뜻은 현재 우리가 여행하면 떠올리는 즐거움과 해방감은 거의 없고, 대신 ‘노동과 수고, 고통’같은 의미들입니다. 현대 영어에서도 travail은 ‘고생, 고역’ 등의 의미가 있고, ‘in travail’이라고 하면 ‘산고로 몸부림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자기가 태어나서 사는 곳에 있지 않고 타지를 다니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생스럽고 힘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20세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재미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시대였습니다. 삶의 터전을 두고 멀리 떠나는 것은 전쟁으로 터전을 빼앗겼거나,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종교적인 열정으로 멀리 순례 여행을 떠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 또한 험난하고 고생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성경은 성도의 삶을 가리켜 나그네와 같은 삶이라고 말씀합니다. (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베드로는 성도를 가리켜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라고 말씀하는데, 거류민은 외국인(foreigner)이나 순례자(pilgrim)를 가리킵니다. 거류민(외국인, 순례자)과 나그네의 공통점은 집(고향)을 떠나 여러 곳을 다니며 이런저런 고생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이 땅에 사는 성도들은 본향을 떠나 객지에서 사는 나그네들이고, 순례자들임을 말씀하면서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삶인지를 말씀합니다. 사람이 오랫 동안 집을 떠나 있으면 집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성도는 이 땅에 살지만 본향인 천국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본향인 천국을 사모하지 않습니다. 나그네로 사는 이 땅이 마치 내 삶의 종착지인 것처럼 세상의 것들을 사모하며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본향은 이곳이 아닌 도래할 하나님 나라임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사모하는 본향은 이런 곳입니다.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