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한국에 온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 선교사가 있습니다. 1884년 헐버트의 아버지(당시 미들베리 대학의 총장)는 친구인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조선에 파견할 영어교사 3명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때 헐버트는 조선에 갈 것을 자원했고, 1886년 최초의 서양식 학교인 육영공원의 외국어 선생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헐버트는 5년 동안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한글로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와 학문을 소개한 책 [사민필지/士民必知]를 썼습니다.
헐버트는 교육 선교사였을 뿐 아니라 고종 황제를 도와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입니다. 일본의 강제합병이 노골화될 때, 고종은 밀사들을 통해 조선의 독립과 안위를 세계에 호소하려고 했습니다. 일본은 헤이그 밀사 사건을 빌미로 1909년 고종을 강제로 폐위시킵니다. 그러나 고종은 폐위된 후에도 밀사를 통해 조선의 억울한 상황을 주변 나라와 세계에 전하는 노력을 계속합니다. 고종의 마지막 밀명은 호머 헐버트 선교사에게 주어졌는데, 그 내용은 상하이의 독일계 은행에 예치된 황실의 비자금을 모두 찾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고종은 은행에 개인 명의로 예치해 두었던 약 100만 마르크(지금으로 환산하면 약 500억원)의 돈을 찾아 독립군을 지원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헐버트가 은행을 갔을 때는 이미 일본이 이 돈을 인출해간 뒤였습니다. 헤이그 밀사 사건 이후 고종의 비자금을 추적하던 일본이 서류를 날조해 고종의 예금을 몰래 인출한 것입니다. 고종은 헐버트에게 마지막 명을 내리면서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소원이라고 했는데, 헐버트는 고종의 마지막 밀명을 수행하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 되어, 그 뒤로 40년 동안 사라진 비자금을 되찾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훗날 헐버트는 당시 예치금 증서와 고종의 비자금에 관한 서류를 갖고 한국에 왔으나 고령의 여독으로 한국에 온 지 일주일 만에 숨을 거둡니다. 왕의 밀명을 끝까지 지키려는 그의 충성스런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이런 당부를 합니다. (마 28:18-20)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마지막 명은 모든 민족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 생명을 다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인 복음전파는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한 명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