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일본의 천재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가 있습니다. 흔히 다쿠보쿠는 우리나라의 김소월 시인과 비교되곤 합니다. 다쿠보쿠는 일본인의 보편적 정서와 애한(哀恨)을 단가(短歌)라는 형식으로 노래하다가 폐결핵으로 26년 2개월의 짧은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를 비롯해 아내와 두 딸들도 폐결핵으로 죽었기에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다쿠보쿠의 시가 있습니다. “내 장난삼아 어머니를 등에 업었다가 / 그 가벼우신 몸에 눈물이 흘러 / 세 발짝도 떼지 못하였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우리를 등에 업고 키웁니다. 세월이 흘러 우리가 장성했고, 어머니가 늙었을 때는 장성한 우리가 늙은 어머니를 업는 것이 삶의 순리일 겁니다. 한문에 효(孝)라는 한자는 자식(子)이 연로한 부모(老)를 등에 업고 있는 모습인데, 사람이 어릴 때는 부모 등에 업혀 자라지만 성장해서는 부모를 업는 것이 인간의 도리임을 보여줍니다.
구약성경 신명기는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언처럼 말씀한 내용입니다. 특별히 모세는 광야에서 태어난 광야 2세대 자손들에게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상기시켜 주는데, 1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30-31절) 모세는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하셨다고 하나요?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는 것 같이 이스라엘을 안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부모가 자녀를 안아 키우는 것처럼 당신의 자녀인 이스라엘을 안아서 키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자녀인 우리를 안아서 광야 같은 인생길을 함께 가고 계십니다. 우리 믿음이 성장(장성)해서 언젠가는 하나님을 한번쯤 업고 가는 모습도 꿈꿔 봅니다.